'막는 인도하심'
사도행전 16:6-7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은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표현은 단순히 사역의 문이 닫혔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구체적이고 주권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동시에 때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어떤 길을 ‘막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단기 선교를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령의 사역은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전도의 문을 여시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뿐 아니라,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시는 부정적인 인도하심도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시아(소아시아) 지역도 분명 복음을 필요로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하시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아볼로와 바울 자신을 통해 복음이 에베소에 전파되게 하십니다(행 18-19장). 성령의 역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에게는 이 시간과 계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7절의 '예수의 영'은 성령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 구절이 주는 의미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역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 사역을 허락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낙심하거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이후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유럽(빌립보)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듯이(행 16:9), 성령께서 길을 막으시는 사역은 한편으로 중요한 일이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알고 순종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보다 마게도냐와 유럽이 더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인지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오직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질서는 바로 잡히게 됩니다. 성령은 단지 능력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역의 방향과 시간까지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사역의 문이 닫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그 자체가 인도의 한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역의 결과가 어떠한가 또는 우리의 계획이 무엇이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령의 막으심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길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복음을 위해 가는 어떤 길이든지. 복음에 참여하기 위한 무슨 일이든지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평가는 사람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점검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