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보았으나, 음성은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셨을 때,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하늘로부터 비치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시느냐 하는, 더 깊은 영적 차원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 음성을 바울만 들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집단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격적인 초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사울아, 사울아’ 하며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마치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야, 모세야’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입니다. 따라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모두가 동일한 영적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같은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되지만, 어떤 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돌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빛이 비추는 곳에 있을지라도, 그 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즉, 빛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빛을 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즉 구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빛은 외적인 계시이지만, 음성은 내적인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어떤 ‘신비한 체험’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경험하는 신비적인 일들이 우리를 구원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일이 우리를 구원하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부르신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믿는 신비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일은 단순한 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그의 완고한 마음이 부드럽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지금 세상에는 그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 빛을 깨닫지 못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메시아를 열망하던 이스라엘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에도 '주님을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입니다(요 1:12).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님은 빛으로만이 아니라 그의 말씀으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