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 군이 백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서로 대치하는 중에 크리스마스를 맞게되는 실제 이야기이다. 기독교를 종교로 믿는 세 나라이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극적으로 잠시 전쟁을 멈추고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병사들은 각자 갖고 있던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적군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 자신들이 비록 전쟁터에 있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속히 전쟁이 끝나고 따뜻한 집과 그리운 가족들에게 돌아갈 날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현실에 놓여있다. 즉 그들은 모두 전쟁의 피해자인 것이다. 왜 같은 마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 전쟁을 계속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는가? 과연 이 전쟁에서 선한 나라는 어디이고 악한 나라는 어디인가? 모두 기독교인이고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고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은 서로 적군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역사는 전쟁을 원하는 자들이 언제나 종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대의 국가들이 전쟁에 승리하는 것을 곧 그들의 신이 승리한 것으로 여겼던 것처럼 기독교 지도자들이 전쟁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메시지를 병사들에게 전했다.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얼마든지 서로 적이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동일한 전쟁이 진행중에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유럽 나토의 국가들 모두가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 어디가 선한 나라이고 어디가 악한 나라인가? 어떤 나라가 하나님이 축복하는 나라이고 어떤 나라가 하나님이 저주하는 나라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장터에서 일어났던 일과 같이 기독교의 신앙은 국가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하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다. 이러한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나라요 백성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도 박해 받는 성도들이 있다. 그들을 박해하는 것은 적국이 아니라 조국의 권력이다. 이미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들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었다. 비록 전쟁은 더 많은 물리적 피해와 목숨을 잃게 했지만 전쟁이 그들의 신앙을 핍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은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게 했다. 위험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국적을 불문하고 전쟁의 피해자들을 돕게 했다. 구 소련 하에서 우크라이나 지하교회가 러시아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베리아 지방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전해 내려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러시아 사람이나 우크라이나 사람이나 하나라는 것이 복음이다. 권력은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여 분열시키고 다투게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참 신앙은 전쟁 중에서도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한국의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 한 나라를 선으로, 다른 나라를 악으로 규정하여 규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일 수 없을 것이다. 공적인 예배에서까지 그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거짓에 속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중에는 한 나라의 권력을 영웅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전쟁 가운데에서 기독교인이라면 각 나라와 민족 안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결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더욱 환하게 비추는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교회는 전쟁을 원하는 권력자들에게 방해거리가 되고 핍박을 받는다.
영화의 끝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인도하던 신부는 종교 권력에 불복하며 사제직을 내려놓고, 크리스마스 휴전에 합의했던 독일 장교와 그의 병사들은 가장 위험한 전장터에 총알받이로 보내진다. 권력은 교회를 박해한다. 그러나 이처럼 전쟁이 국가들과 민족들을 나눌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교회는 하나이고, 함께 박해 가운데 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