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절망했을까?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신명기 32:52)
하나님께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신 32:51) 고 말씀하셨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결정에는 서운하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은 자로서(민 12:3) 이 상황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였으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세가 개인적으로 그토록 고대했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절망하지는 않았을까 질문해본다.
한 인생의 여정에서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곳을 사십년이 걸려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겠는가? 그 시간과 물질의 피해와 후회와 충격은 삶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에게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사십년을 양을 치며 익숙하던 광야에서 열흘이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더니 사십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가나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아는 것과는 별도로 이러한 상황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어려움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짐이겠는가! 사십년동안 광야에서 헤메고 있는 이유를 지도자 모세의 탓으로 돌리며,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사십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끄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스리시지 않으셨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길로 가버리고 싶은 미혹에 넘어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백성들을 잘 이끌지 못하여서 광야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에 대해 자책하고 또 자책하며 우울하고 침통한 시간으로 그 시간들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결코 평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그 시간에 모세는 온유한 자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다. 그 누구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많은 상황들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만약 모세가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음에 대하여 눌려서 힘들어 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면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자신에 대한 정죄감에 시달리며 비참히 인생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어느 곳에도 모세가 그러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모세가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절망했다고 믿지 않는다.
사십년의 광야 여정이 시작되기 전 모세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았다. 온 민족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중에 작은 불씨와 같이 피어오르는 자녀들을 본 것이다. 이것이 모세가 열흘이면 갈 수 있던 광야에서 사십년을 지내면서도, 그리고 그 백성들의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가나안 땅이 정복되는 것을 이미 믿음으로 보았고, 바로 그 정복될 땅을 하나님께서는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여호수와와 갈렙은 사십년을 광야에서 자랐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무도 그들이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실패한 부모세대에 의해 광야에서 고생하고 젊은 시절을 소모해버린 자녀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부모의 세대는 영적으로 타락했고, 믿음의 어른들을 보기 힘든 공동체에서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가 타락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들은 자랐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십년의 광야 생활을 그들을 위한 것이 되게 하셨다. 열흘만에 가나안에 갔다면 그들은 거기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부모의 잘못된 결정으로 고생을 하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획하신 일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부모도 처음에는 자식의 신앙을 위해 광야라는 상황이 염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로 인해 자식이 어려움을 당한다는 생각은 부모로서 참으로 어려운 마음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셨다. 그들은 사십년이라는 시간이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아버지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여분네의 아들 갈렙’ (민 14:6).
인생에서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길을 생각지도 않게 아주 많이 많이 돌아서 가게 된 것 같은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들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생각하며 힘들어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자녀를 위해 맞는 길이었나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한 때에 모세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녀들을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형통해 보이는 길로 이끌지 못하고, 가장 험하고 어렵고 좋지 않은 길로 데려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여정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게 된 바로 그 마음이다. 모세는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서운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수기 14: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