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grim0913 2023. 2. 15. 09:3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요한이라 불리었던 마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과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장소 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초대 교회의 기도와 예배 처소로도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행 12:12). 그러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난 마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사도들과의 교제도 있었을 것이고 외삼촌이었던 바나바에게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에 알몸으로 도망을 갔던 사람이었고, 선교여행에서 쫓겨나는 아픈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했던 마가가 로마에 있는 핍박받고 있는 교회들에게 이 복음의 편지를 쓰기까지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일까? 무엇이 복음을 삶의 짐으로 여겨 도망했던 그를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게 하였을까? 그가 사도 바울과 동역하게 되고(골 4:10; 몬 1:24; 딤후 4:11), 베드로가 아들이라고 부름만큼(벧전 5:13) 그의 신앙이 성숙해진 것은 특별히 그에게만 일어났던 변화일까 아니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일까?

복음을 믿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기쁨’이다. 그 기쁨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시작이다. 복음을 듣고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된다면 복음은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 기쁨은 세상에서 알고 있던 기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전의 기쁨은 자신의 생각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면 복음의 기쁨은 자신을 버려서라도 얻고 싶은 기쁨이다. 만약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의 내용을 이성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할지라도 복음이 주는 기쁨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이 복음을 믿게 되는 것이다. 마가는 복음을 듣고 알았지만 그것이 그의 믿음이 되기까지 성장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과정을 겪는다.

그런고로,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이 기쁨을 쟁취하려는, 또한 잃지 않으려는 싸움이다. 이 믿음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만약 오랫동안 복음을 듣고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복음에 대한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믿으려는 싸움에 대해 아무런 열정이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의 싸움을 위하여 날마다 분투하고 있다면 때때로 넘어질지라도 결코 이 복음으로 인한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구원에 대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어떻게 세상의 것과 다른가? 그것은 동일성과 영원성과 최대성을 갖는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한 기쁨이며, 동시에 결코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이고, 또한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다.

스크루우지 영감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소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스크루우지라는 노인에게 전혀 기쁘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기쁜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로 바뀌는 변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그렇게 기쁨 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 기쁨이 이유가 되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와 같이 만일 어떤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 주어졌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주어진 기쁨만큼 관대해지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베풀지 않을까? 만일 그 사람이 그 기쁨을 준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는 그 대상을 또한 기뻐하고 신뢰할 것이다. 만일 그 기쁨이 온 우주에서 가장 큰 기쁨이며 영원한 기쁨인데, 그것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분명히 그는 영원한 평안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쁨이 이 땅의 사람들 가운데 주어졌다. 누구든지 이 기쁜 소식을 믿는 자들에게 그 기쁨이 주어진다는 약속과 함께...

복음의 핵심은 ‘기쁨’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 동안 유대인들이 기다려 왔던 구원에 대한 소식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나타내는 말 ‘유앙겔리온’은 바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마가는 그 기쁜 소식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복음에 대한 그의 책을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