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사도행전 20장에서 유두고(Eutychus)가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고 창에서 떨어진 사건(행 20:7–12)은 단순한 사고 이상의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바울이 즉시 그를 살리는 과정은 깊은 복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두고는 '청년'(실제로는 어린 십대)이었으며, 밤중까지 이어지는 바울의 긴 설교 중에 졸다가 삼층 창틀에서 떨어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육체적 연약함, 집중력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신앙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피곤하고 졸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경각심을 동시에 줍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나, 은혜는 그 실수를 회복시킵니다. 바울이 유두고를 살리는 일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한편, 바울이 전하는 말씀은 생명을 주는 복음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이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장면은, 단지 설교가 길어서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각성 없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영적 추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두고가 “죽었다”고 선언되었지만, 바울이 내려가 그를 안고 “그의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말하며 살립니다.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 곧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전반에 흐르는 부활 생명의 능력이 여기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바울은 설교를 멈추고 즉시 내려가 유두고를 안아 일으킵니다. 이는 공동체의 한 지체가 무너졌을 때, 교회는 그를 무관심하게 방치하지 않고, 내려가 ‘안아주는’ 회복 사역에 나서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를 안고”라는 표현은 단순히 살린 것 이상으로, 공감, 위로,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아픔당한 지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본보기입니다. 유두고가 살아난 후, 바울은 다시 설교를 이어갑니다.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 20:11). 설교가 얼마나 길게 이어졌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죽음과 생명을 오가는 중에도 말씀은 중단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강하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행 20: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의 회복을 통해 공동체 전체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두고의 죽음이 그의 연약함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복음의 능력은 그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가 떨어졌지만, 다시 일어나게 된 장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영적 추락 후에도 은혜로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을 줍니다. 또한 바울이 그를 살린 것은,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실현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즉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그 복음이 선포될 때 실제로 생명이 회복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진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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