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어제 영어 예배 셀모임을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체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 유명해서, 때로는 그 파격적인 의미를 무디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현실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험담하고, 불이익을 주는 상황을 떠올릴 때, “사랑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부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신 걸까요? 이 말씀은 모든 악을 무조건 용납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악과의 싸움을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약 4:7), “깨어 있으라… 대적하라”(벧전 5:8–9)는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해치고 거룩을 무너뜨리는 죄와 사탄의 권세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 사랑'은 개인적인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적대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즉, 나를 모함하거나, 미워하거나, 나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의 방향이 어떤가를 점검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해와 비를 주시는 것처럼(마 5:45), 우리도 그 사랑을 닮아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약자가 억울함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은 보복과 증오의 논리를 넘어서서 사랑과 용서로 반응하는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약함이나 방임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리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악을 드러내고, 빛 가운데로 이끄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한 최선의 무기이며, 동시에 나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상대를 위한 것이면서도, 나 자신이 미움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박해 받은 교회의 소식들을 종종 접합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이유로 이웃들에게 매맞고 쫓겨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극심한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박해를 받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고, 그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결국 그들의 신앙도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은혜도 주십니다. 그 은혜가 아니면 누구라도 '원수'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은 불편, 억울함, 오해, 소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서는 것. 원수를 향해 욕하지 않고, 침묵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삶은 결코 나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언제나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하는 것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사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이 은혜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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