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말씀과 성령을 따라서

"십자가로" - 에베소서 2장 16절

Pilgrim0913 2024. 2. 6. 01:15

에베소서 2장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라는 말에는 예수가 저주 아래 있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고,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일이 실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우리는 십자가를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십자가는 인류가 고안해 낸 처형 방법 중 가장 악랄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를 볼 때 당연히 '저주'를 떠올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곧 저주 받은 자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십자가에 그리스도께서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이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생각일 뿐, 온 인류가 이미 저주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대신 그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 앞에 어느 인간도 그 진노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도 흔해져 버린 십자가들이 예수님이 받으신 저주에 대한 심각성을 흐리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말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그 십자가에 달려있어야 할 우리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원수된 자로서의 내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행복과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즉 더 이상 불의한 자가 아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또한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 그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8-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