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7:1-2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죽음'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울까요? 아니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일까요? 오늘 말씀은 삶과 죽음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말하지만, 오늘 말씀과 같이 의인에 죽음에 대해서는 이른 죽음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의인이 복을 받아 이 땅에서 장수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고 법칙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완악해진 인간 세상에서는 의인이 일찍 죽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임을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삼에서 편히 쉬리라'(사 57:2). 이사야가 본문을 기록할 때는 히스기야 다음으로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 21:16).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같습니다. '바른 길'이란 악인의 '구부러진 길'과 대조되는 길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를 따르는 길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이 악한 자들에게 불리어가고 죽음을 당해도 마음에 두지 않으며,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의인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죽어 평안한 안식처에 들어가 편히 쉰다는 것을 말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 큰 짐인 것이 사실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삶보다 무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각과 달리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이 땅에서 데려가실 때에 그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며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죽음은 일상에서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삶이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의 죽음이 복된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죽음이 어떠한지(시 116:15)가 결국 그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그들이 행한 일을 따름이라')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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