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묵상/"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가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 (15)'

Pilgrim0913 2025. 10. 28. 23:08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태복음 22:2)

 

천국은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 잔치는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잔치 입니다. 하나님은 종들을 시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초대된 사람들이 모두 잔치에 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 잔치가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초대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한다거나(3절), 자신의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잔치에 무관심하다거나(5절), 초대하러 온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것(6절)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 잔치의 초대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왕의 초대에 대한 개인적인 멸시나 왕이 베푼 자비에 대한 모욕입니다. 마땅히 왕의 진노는 이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7절) 

왕이 계속해서 다른 종들을 보내는 것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 분의 인내와 오래 참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의 선하심을 무시하고 거부한 후에도 계속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인내의 때가 차면 하나님의 진노의 때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고, 왕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를 받았던 사람들은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종들을 보내어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9절)고 명합니다. 왕의 이 지시는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제공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10절). 천국은 그가 '악한가 선한가'가 아닌 그가 '초대에 응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왕이 마련한 예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이제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잔치에 오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든지 상관없이, 왕의 예복을 입고 있습니다. 왕이 들어와서 손님들을 볼 때에 그는 그들의 예복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가 왕이 제공하는 은혜를 의도적으로 거부했음을 보여줍니다. 왕에 대한 이 사람의 무례함은 아예 오기를 거절한 사람들보다 왕에게 더 모욕적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왕의 면전에서 무례함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왜 예복을 입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 자신은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고 기도한 바리새인의 비유가 떠오릅니다(눅 18:11). 이 이미지는 외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보이는 교회에 속해 있지만 자신의 의를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의의 겉옷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면서 왕의 은혜롭게 제공하는 더 나은 옷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항하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주님은 '그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12절)고 하시고, 왕은 그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명합니다(13절). 

천국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곳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청함은 복음 메시지에 본질적으로 포함되는 회개와 믿음으로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이 청함은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만 '적은 사람'이 거기에 응답합니다. 그 응답하는 사람들이 곧 '택함을 입은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