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묵상/"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가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 (16)'

Pilgrim0913 2025. 10. 30. 01:16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태복음 25:1)

주님은 이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그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재림의 때에 천국이 어떤 모습일지를 가르치십니다. 한마디로, 그 때의 천국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앞선 마태복음 24장의 끝에서 예수님은 두 종의 비유—즉,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를 통해 두 사람의 차이가 주님의 재림의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열 처녀의 비유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상보다 늦어질지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재림을 예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1–12절)

열 처녀는 모두 신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들이 등을 든 것은, 혼례가 끝나고 신랑이 신부와 함께 행렬을 지어 신랑의 집으로 갈 때 그 길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선 두 종의 비유에서 악한 종은 분명 불신자를 상징했지만, 이 비유의 열 처녀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즉 자신을 교회의 일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직 슬기로운 처녀들만이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는 등(겉모양)에 있지 않고 기름(속에 있는 실제 생명)에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신가에 있습니다.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듭남이 없다면 그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생각할지라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미련한 처녀와 같은 일이 그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신랑이 더디 오므로” (5절)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억하며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열 처녀 모두가 잠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잊고 사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날이 오면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6절)
그 때가 되면 누가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며, 누가 겉모양만 교인이었는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천국에 속한 자라면,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일 것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