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장 47절)
예수님의 시대에 어떤 어부들은 크고 무거운 그물을 사용하여 호수 바닥까지 내려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물을 끌어올리면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들어 있었고, 어부들은 그 물고기들을 분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8절)
이와 비슷하게,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는 자신을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때가 되면 그들은 의인과 악인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49절)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섞여 있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다른 비유, 곧 “가라지의 비유”(마태복음 13:25–30)에서도 나타납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는 언제나 의인과 악인이 함께 존재해 왔습니다.
의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입니다.
악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즉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과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이 필요합니다.
첫째,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적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교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예배가 있습니다.
교회는 공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또 각 신자의 삶을 통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도, 그리스도의 증인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진정한 예배자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공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교회에 대한 모든 공격은 결국 공예배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물리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막았고, 또 어떤 때는 예배라고 불리는 시간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만족시키는 것들로 가득 채워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공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시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배의 중심과 주인공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온갖 사람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그 시간을 채워 놓고 그것을 예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비유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49절)
이러한 일들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천국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과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갈라내실 것입니다.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지만, 악인들은 풀무불에 던져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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