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9절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신약교회 당시 그리스도인으로서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들에게 이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노예들을 대할 때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주를 섬기듯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노예가 형제가 되게 합니다. 이것은 주인과 종이 그리스도인일 때 한 주님에 대한 충성에 근거해서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의 고용주와는 달리 그 당시 '상전들'에게 노예는 소유물로서 그들의 목숨에 대한 권한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상전들에게 '위협을 그치라'고 명령합니다. 상전들에게는 권위가 있고 그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용주로서 권위를 사용할 때에 정의와 은혜로 그 권위를 사용합니다. 사람을 위협하지 않으며, 학대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공평하신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의 고융주들도 피고용인들의 생사에 영향을 미칠만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 권한을 남용한다면 하늘의 상전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일한 잣대로 대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주인들의 특징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며,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종을 자신의 노예라는 이유로, 또 그가 천한 신분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압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외모를 취하는 것'에는 우선 영적인 면이 있습니다. 외적으로 구원받을 만한 자, 거룩한 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행 10:34).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에 대해 바울도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 2:11)고 선언합니다. 또한 '외모를 취하는 것'에는 육적인 면이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 2:3-4). 그로 인해 가난한 자들이 업신여김을 받고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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