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고난 주간에 생각하게 되는 것중 하나는 '용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중 하나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는지를 알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용서받은 것도 아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해서 용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용서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는 '용서의 사역'이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이후에 제자들에게 주신 천국 비유가 '자신의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마 18:22)입니다. 천국은 어떤 왕과 같은데 그 왕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고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은 '왕과 결산해서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종은 없다' 입니다. 즉 천국은 결산을 통해서는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인이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하여 주는 것입니다(마 18:27).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고자 하는 용서입니다. 그런데, 그 용서(그 빚의 탕감)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사람들은 비유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계십니까? 왕이 그의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었으나 그는 자신에게 약간의 빚진 자를 긍휼이 생각하지 않고 참아 주시도 않고 빚을 갚으라고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용서에 대해 자신이 주관자인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복음을 퇴색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 복수의 힘으로 되갚는 것이 아닌, 긍휼로 복수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립니다.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온 것이며 복수와 분노는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과 같이 용서에는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대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우리에게 내리지 않으시고, 대신 십자가 위에서 아들 예수에게 그 진노를 부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의 빚이 탕감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공의를 행하려 하면서 자신에게는 은혜를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가운에 공의를 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받은 은혜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그 은혜에는 반드시 '용서'가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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