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칼럼/"내 증인이 되리라."

폭풍이 일어나는 이유

Pilgrim0913 2023. 1. 27. 11:21

바람 중에 "폭풍"이라는 것이 있다. 바다에서는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는 강한 바람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폭풍은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폭풍은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지구 남북의 온도를 조절하여 이상기후를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상기후라는 것이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의 하나라면 - 이상기후도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법칙의 결과이다 - 폭풍이라는 것은 그 무질서를 막는 어떤 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노아 시대의 대 홍수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무질서의 끝으로 치닫는 세상을 완전한 파멸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노아 시대의 홍수와 격변은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많은 자원들을 남겼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항상 그 분의 사랑이 함께 하신다. 성경에 폭풍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있다. 그 중에 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선지자 요나가 만났던 폭풍이고 두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났던 폭풍, 그리고 세번째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항해 길에 만났던 폭풍이다. 폭풍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계실까 궁금했다. 생각컨데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에 만나는 폭풍도 바로 이러한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달아나다가 폭풍을 만났다고 기록되어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요1:4) 성경은 폭풍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요나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폭풍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요나를 깊은 잠에 들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폭풍에 두려워 떨었던 사람들은 그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요1:5) 폭풍의 이유는 요나의 길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요나를 두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선원들은 미신적인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뽑히게 하셨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요나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요1:12) 하나님은 폭풍을 일으키셔서 요나의 길을 바로 하시고 니느웨의 영혼들을 구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한 번은 예수님을 배에 태우고서, 또 한번은 예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폭풍을 만난다.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눅8:23) 광풍은 왜 일어났을까? 성경은 '마침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광풍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수께서 잠이 깨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있느냐?' 하신 말씀에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함께 하심을 수시로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때를 따라 광풍을 일으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너무도 잘 잊어버린다. 폭풍 가운데에서 파도만 보고 정작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문제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의 문제, 신앙의 문제는 모두 여기에서 온다. 그 분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늘 말로는 되뇌이면서, 실제로는 두려움과 염려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또 다른 광풍을 만났을 때 예수께서는 산 위에서 기도를 마치고 그 장면을 보고 계셨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호수에 익숙한 어부들도 있었지만 무기력한 모습으로 배를 젓고 있었다. 그곳에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 오시고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친다. 나에게 아무리 익숙하고 자신있던 일이라도 예수님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폭풍은 제자들의 이러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졌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의심'은 항상 '내가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잠시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에 빠지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옳은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모든 일들을 판단하고 의심한다. 그러다가 '나의 옳음'이나 '나의 능력'으로는 안되는 상황을 만날때 수렁으로 빠진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사시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능력과 확신을 의지해 살지 않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살도록 부르셨다(갈2:20).

바울은 로마로 가는 항해 중에 '유라굴로'(행27:14)라는 태풍을 만난다.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폭풍을 만난다. 피해 갈 수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피해가지 않도록 하실 때가 있다(행27:11). 그 폭풍은 때로는 너무 거대하여 살 소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행27:20) 이러한 폭풍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바울이 선언한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3-25)
그리스도인의 삶에 분명히 폭풍이 있지만 그 폭풍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폭풍이 일어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의 진리가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더욱 선명하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이 바로 그러했다.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을 "증인"으로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