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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매일 아침,아내는 출근을 하고나는 집에서 일과를 시작한다.아내는 출근 전에 부지런히남편의 아침을 만들어 놓고긴 하루를 위해 집을 나선다.어두운 새벽에 일어나출근하기 전에 이미 많은 노동을 끝낸아내의 뒷모습을 본다.가장 약한 자에게가장 큰 능력으로 나타나시는주님의 은혜를 만난다.일찍 집에 와 다리 쭉 뻗고 푹 쉴 수 있기를 바라지만,아직은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안타까운 마음과 감사함,그리고,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이끄시는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한다.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예수 안에 사는 것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의 발걸음은 종종 어디로 내딛어야 하는지 모르고 오래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갈 길을 밝히 보이신다 했는데 그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한 길과 다른 주님이 가시는 길이어서 그 길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가? 옛적에 욥이라는 사람은 온갖 고난 중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자신의 길을 아신다고 고백했다. 욥은 자신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단련'이라는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인생에는 오직 두 가지 길이 있다. 멸망으로 가는 길과 생명으로 가는 길.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마 7:14). 주님은 언제나 갈 길을 밝히 보이신다. 나도 항상 그 길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으로 하는 것.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 일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동기이다. 즉, '사랑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욕망으로 하는 것인가'이다. 욕망으로 하는 것은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고, 사랑으로 하는 것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특별히, 누군가와 동행할 때 그렇다. 그것이 여행이든지, 결혼이든지, 신앙이든지.

자녀와의 시간

자녀의 스물 네번째 생일.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 은혜. 앞으로도 지켜주실 하나님께 감사. 이 땅에서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스물 네번의 해가 더 지난다면 떠나는 나이쯤이 되지 않을까. 이제 반을 왔고 반이 남은 것이라면 함께 산을 올랐고 함께 산을 내려가는 때. 고되게 오른 만큼 즐겁게 내려올 시간들을 기대하며, 잠시 이별할 그 날을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후회'와의 싸움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워 잘 쓰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후회'도 그렇다. 내가 누군지 몰랐고 알아도 고치지 않았고 현실도 몰랐고 다 아는 줄 알았다. 돌아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가득한데 그 때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회는 반성을 낳는다지만 왔던 길은 바뀌지 않고 결국 후회는 자기 주장일 뿐이다. 사실, 나는 알 수 없다. 무엇을 후회해야 하는지 필요한 것은 용서이고 해야할 일은 사랑이다. 삶에는 주인이 있고 사는 것은 신뢰하는 것이다.

우편강도, 예수님을 위로하다.

성탄을 기념하는 계절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짐승의 구유에 누이신 것에 대해 사람들은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누우신 곳은 결코 낮은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낮은 곳, 천한 곳으로 보였던 그곳은 실제로는 높은 곳이고, 귀한 곳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부터 죽으심 까지의 모든 여정이 세상이 보기에는 낮고 천하고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십자가는 사람들이 볼 때 가장 낮고 천하고 실패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왕이시며 주인이시므로, 따라서 그 분이 가신 곳이 곧 높은 곳이요 귀한 곳이요 승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셨던 가장 귀한 장소이고 가장 큰 승리의..